큐터뷰 #19. 브랜드는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조인후

by. 조인후

25. 01. 23



"양말도 소유욕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갖고 싶어서, 소장하고 싶어서 사는 물건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양말 하나로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양말은 결국 소모품이잖아요"라는 시선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보타(VOTTA)의 김민재 대표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장 일상적인 양말조차도 누군가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순 없을까?'


그저 나이키를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이었던 그는, 각 카테고리별 대표 브랜드를 살펴보다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했어요. 스포츠 웨어는 나이키, 커피는 스타벅스처럼 모든 영역에 상징적인 브랜드가 있는데, 양말만큼은 그렇지 않더라는 거죠. 그렇게 시작된 도전이 어느덧 10년째 이어졌어요.


업계에서 '양말에 미친 사람'으로 알려진 그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어요. 원가를 낮추기 위해 면 함량을 줄이고 합성섬유를 쓸 수도 있었지만, 그는 최고급 면사만을 고집했죠. 해외 생산이 수익에 유리하단 걸 뻔히 알면서도 국내 생산을 고수했고요. 브랜드의 신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원칙들은 한 번도 타협하지 않았어요.


보타 매장을 찾는 모든 손님에게는 새 양말을 직접 신어볼 기회가 주어져요. 한번 신어본 양말은 더 이상 판매할 수 없어 손실이 나지만, 그는 "진정한 가치는 직접 경험할 때 비로소 이해된다"라며 이 과감한 정책을 이어가고 있죠.


이 모든 과정에서 그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하나였어요. '브랜드는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라는 것. 이런 흔들리지 않는 신념은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죠. 300만 원어치 양말을 구매하는 열성 고객이 생겼고, 지브리 스튜디오, 분더샵, 포터리 같은 유명 브랜드들이 먼저 협업을 제안해왔어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양말을 '소유하고 싶은 물건'으로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10년을 달려온 그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해요. 변화가 빠르고 새로운 것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시대에, 묵묵하게 한 우물만 파온 그의 여정에서 우리는 어떤 깊이 있는 통찰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패션에 대한 관심이 양말 브랜드로 이어진 구체적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히 나이키를 좋아하셨다고 했는데,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이 있나요?


사실 보타(VOTTA)는 단순히 패션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에요. 제 꿈은 원래 나이키 입사였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나이키 신발을 열정적으로 수집할 정도로 브랜드에 푹 빠져있었죠. 하지만 점차 깨달은 것이, 완성된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보다 제가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여정이 더 가슴 뛰는 도전이 될 것 같았죠.


브랜드를 구상하면서 흥미로운 통찰을 얻었어요. 각 제품 카테고리별로 대표 브랜드를 살펴보니, 스포츠웨어는 나이키/아디다스, 커피는 스타벅스처럼 누구나 떠올리는 상징적인 브랜드들이 있었죠. 그런데 양말 시장만큼은 이런 대표주자가 없었어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처음에는 이 틈새시장이 기회라고만 생각했죠. 하지만 실제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왜 양말 카테고리에 강력한 브랜드가 없었는지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양말은 저렴해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이 너무나 견고했거든요. 지하철에서 2-3천 원짜리 양말이 팔리고, 온라인에서는 10켤레에 5천 원, 1만 원 하는 제품들이 넘쳐났죠. 게다가 고가의 패딩이나 시계와 달리, 낮은 마진으로 지속적인 판매가 필요한 구조라 많은 양말 브랜드들이 오래 버티지 못했어요.


하지만 보타가 10년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런 시장의 한계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도전했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 한계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려 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보타만의 독보적인 정체성이 되었어요. 나이키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도전 정신과 혁신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가 아닐까 해요.



보타라는 브랜드명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브랜드 네이밍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는 무엇인가요?


보타(VOTTA)라는 이름에는 우리 브랜드의 핵심 철학이 담겨 있어요. '지킬 보(保)'와 '다를 타(他)'라는 한자어를 조합했는데, 이건 브랜드를 시작하기 전 1년 간의 깊은 고민에서 나온 거였죠. 저는 끊임없이 자문했어요. "양말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이 결국 브랜드의 정체성이 됐죠.


'지키다'라는 의미는 제품 퀄리티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신념을 상징해요. 브랜드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한 가지 핵심 가치를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고 믿었고, 우리에게 그건 바로 '품질'이었죠. '다르다'는 의미에는 기존 양말 시장의 관성을 깨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도전 정신을 담았어요. 단순한 포장 케이스 하나도 기존과는 다르게 접근했고, 양말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싶었죠.


사진: 인터뷰이 제공


브랜드 로고를 영문으로 한 것도 장기적인 비전을 담은 선택이었어요. 처음부터 미국을 주요 타깃 시장으로 보았고, 중국도 중요한 시장으로 염두에 뒀죠. 한자로 된 브랜드명으로 아시아 시장과의 문화적 연결성을 가져가면서, 동시에 영문 로고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고자 했어요. 재미있는 건, 5-6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제가 선택한 한자가 중국어로는 전혀 다르게 읽힌다는 점이었죠. 이런 작은 실수조차 지금은 우리가 얼마나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됐어요.



양말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네요. 양말이라는 제품에 대한 관점과 제작 철학이 궁금합니다.


저는 양말을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닌 '속옷'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어요. 속옷은 절대 불편해선 안 되잖아요?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소재예요. 최상급 면 원사를 쓰고, 면 함량을 50% 이상으로 맞추는 건 저희의 기본 원칙이죠.


면은 다른 소재들과 비교했을 때 정말 특별한 장점들이 있어요.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보다 2배에서 20배 정도 높은 흡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땀을 잘 흡수하고, 통기성도 뛰어나거든요. 특히 발은 하루 종일 양말 안에 갇혀있는데, 통기성이 좋은 면 소재는 습기를 잘 배출해서 피부 건강에도 도움이 되죠.


재미있는 건 이런 고집이 때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아크릴이나 나일론 같은 합성섬유를 쓰면 구멍이 잘 안 나는데, 저희는 고급 면을 써서 오히려 구멍이 더 잘 날 수도 있죠. 마찰에 약하고, 필링제 처리도 안 해서 섬세한 관리가 필요해요. 그래도 부드러운 착용감과 피부 건강을 위해 이 원칙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죠.


요즘 시장을 보면 OEM을 맡기거나 브랜드 라이센싱만 하는 곳이 많아요. 중국 제품을 그대로 가져와서 상표만 바꿔 파는 곳도 있더라고요. '장사는 저렇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저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요. 그래야 소비자들에게 자신 있게, 떳떳하게 권할 수 있으니까요.




'메이드 인 코리아를 고수하시는 이유가 궁금한데요. 실제 운영에서 어떤 이점이 있나요?


국내 생산을 고집하는 데는 세 가지 핵심적인 이유가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품질 관리죠. 양말 생산은 의류와 달리 최소주문량이 600-1000개는 되는데, 해외에서 이런 큰 물량을 만들다가 불량이 나오면 정말 큰 타격을 받게 돼요. 국내 생산이면 제품 퀄리티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바로바로 피드백할 수 있어서 훨씬 안정적이죠.


두 번째는 수출 시의 혜택이에요.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과의 FTA 혜택을 받으려면 반드시 한국산이어야 하거든요. 실제로 이런 이점 덕분에 미국, 캐나다, 태국에 꾸준히 수출하고 있고, 프랑스, 중국, 필리핀까지 수출망이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마지막으로는 각 나라별 맞춤 유통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미국에선 에이전시가 'VOTTASocks.com'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캐나다에선 특이하게도 커피숍과 양말을 접목한 형태로 판매하고 있죠. 태국은 현지 편집숍과 협업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컨테이너 단위의 대량 수출이 아닌, 박스 단위로 각 시장 특성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죠.


특히 재미있는 건 이런 해외 진출의 시작이 대부분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서라는 거예요. 처음엔 작은 DM으로 시작했던 문의들이 실제 수출로 이어지곤 하죠. 앞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만의 고집스러운 품질은 지키되, 각 시장에 맞는 유연한 전략을 계속 찾아갈 생각이에요.



'Discover your color'라는 슬로건이 인상적인데요. 이렇게 독특한 메시지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처음 양말을 만들 때만 해도 시장이 정말 단조로웠어요. 직장인들 대부분이 검정색, 차콜 그레이, 흰색... 이런 무채색 양말만 신고 다녔죠. 일상도 비슷했어요. 아침 8시쯤 되면 다들 지하철역에 줄 서 있고, 8시 40분까지 회사 도착하고.. 마치 쳇바퀴 돌 듯 똑같은 패턴이었죠. 다들 핸드폰만 보면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31가지 컬러의 양말을 만들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이 다양한 컬러 중에서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하고요. 'Discover your color'라는 메시지에는 그런 작은 도전이 담겨있죠. 재미있는 건, 우리 선조들은 한옥의 단청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훨씬 다채로운 색을 즐겼다는 거예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산업화를 거치면서 이렇게 획일화된 색에 갇혀버린 것 같아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잖아요. 요즘 말로 MBTI처럼요.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사람도 있고,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한번쯤은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어요.


저희에게 양말은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니에요. 자신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채널이죠. 무채색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여정, 그게 바로 'Discover your color'에 담긴 진짜 의미예요. 어떤 분은 양말 하나로 시작해서 점점 다른 패션 아이템에서도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더라고요. 그런 변화들을 보면서 저희가 하는 일에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있죠.



커피와 양말이라는 이색적인 조합으로 보타홈을 운영하고 계신데요, 이런 독특한 고객 경험 설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서교동에 있는 보타홈이 벌써 5년이 됐어요. 재미있는 건, 처음엔 커피도 판매하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돈을 받고 드린 적이 없다는 거죠. 브랜드를 위한 공간에서 커피를 판매하다가는 결국 그 목적이 훼손될 것 같았어요. 대신 이 공간을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커피 한잔으로 감사함을 표현하게 되었어요.


우리 매장이 특별한 건, 인사동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아니라는 거예요. 인사동은 지나가다 예쁘다 싶어서 충동구매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서교동은 달라요. 보타라는 브랜드를 알고 이곳까지 일부러 찾아와 주시는 거잖아요. 그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방문해주시는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가끔 "양말이 1만2천 원인데 5천 원짜리 커피를 무료로 드리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요?"라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전 오히려 이렇게 멀리까지 저희 브랜드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께 커피 한 잔이라도 대접하는 게 당연하다고 봐요. 사실 이게 마케팅 전략이라기보다는, 진정성 있는 감사 표현이었죠.


그래서 보타홈은 단순히 양말을 파는 곳이 아니에요. 우리 브랜드를 믿고 찾아와 주시는 분들과 만나는 특별한 소통의 공간이죠.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 한 잔에는 그런 감사한 마음이 담겨있어요.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보타가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 공간은 우리 브랜드의 진정성을 전하는 특별한 접점이 될 거예요.



긴 양말을 싫어하던 고객이 보타 양말의 팬이 되었다는 피드백이 인상적입니다. 이런 생생한 고객 반응을 어떻게 접하시나요?


처음 보타를 시작할 때는 30~40대 남성 고객을 타깃으로 했어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생각했던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지더라고요. 창업 초기에는 남성 고객이 80%였는데, 지금은 6:4 정도로 여성 고객님들도 많이 찾아주시고, 연령대도 2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정말 다양해졌죠.


사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양말이 뭐 그렇게 특별하겠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세요. 그런데 한 번 신어보시면 생각이 완전히 바뀌시더라고요. 다른 양말은 신다 보면 돌아가고 헐렁해지는데, 저희 양말은 쫀쫀하게 발 모양을 잡아준다는 게 특징이거든요. 이런 경험을 하신 분들은 '이제 다른 양말은 못 신겠다'며 계속 찾아주세요.


실제로 저희 매장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양말만 300만 원어치 구매하신 분들도 계실 정도예요. 처음엔 반신반의하셨던 분들이 이렇게 브랜드의 진정성과 제품의 가치를 알아봐 주실 때마다 정말 뿌듯하죠. 이런 고객분들의 신뢰가 있었기에 보타가 지금까지 한걸음 한걸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매장에 보면 의자가 여러 개 있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고객분들이 편하게 앉아서 양말을 신어보실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했어요. 초기에는 '매장에서 직접 신어보고 구매하세요'라고 적극적으로 권유도 했었죠. 고객들에게 보타 양말만의 특별한 착용감을 직접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고객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신발 벗고, 양말 벗고, 새 양말 신어보고.. 이 과정 자체를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마치 속옷 매장에서 피팅하는 것처럼 불편해하시더라고요. 😅


그래서 지금은 고객분들의 편의를 더 생각해서, 꼭 신어보지 않으셔도 된다고 안내해 드리고 있어요. 대신 신어보기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의자는 그대로 두었죠. 시착하신 제품은 저희가 따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고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이렇게 매장 운영 방식은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은 저희에게 매우 소중해요. 온라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브랜드의 감성과 제품의 실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니까요. 앞으로도 이 공간에서 더 많은 분들과 만나며 소통하고 싶어요.



앞으로는 남성용과 여성용 양말을 완전히 다르게 디자인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시장 경험이 이런 결정으로 이어졌나요?


이건 정말 10년 동안 양말을 만들면서 얻은 중요한 깨달음이에요. 재미있게도 처음에는 남녀 구분 없이 동일한 디자인으로 가자는 생각이었죠. 사이즈만 다르게 해서, 발 큰 여성분들은 남성용을 신으실 수 있게 하는 식으로요. 특히 해외 수출을 염두에 뒀을 때는 이게 효율적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장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완전히 다른 걸 발견했어요. 남성과 여성이 선호하는 디자인이 너무 달랐거든요. 단순히 크기나 색상의 문제가 아니라, 양말에 대한 기대 자체가 달랐던 거죠.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디자인으로 가는 건 결국 양쪽 모두를 완벽하게 만족시키지 못하는 길이겠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 과감한 결정을 내렸어요. 이제는 처음 기획 단계부터 남성과 여성의 제품을 완전히 분리해서 진행하려고 해요. 사실 이런 결정이 쉽지는 않았죠. 특히 해외 수출을 고려하면 제품 라인을 단순화하는 게 효율적이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남성과 여성, 각각의 니즈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제품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더 선명히 드러날 수도 있겠죠. 양말 하나로도 확실한 만족감을 드릴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더 분명하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양말을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저는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단순히 예쁜 디자인을 넘어서, 꼭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거죠. 사실 이제는 좋은 양말을 만드는 방법, 그러니까 기본적인 품질이나 착용감 같은 건 저희가 충분히 노하우를 쌓았거든요. 그건 이제 기본이 됐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있죠. 저는 양말이라고 해서 단순히 '필요해서 사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봐요. 사람들이 "저거 꼭 사고 싶다", "저거 신고 싶다", "갖고 싶다".. 심지어는 "당장 신지 않더라도 소장하고 싶다"라는 감정이 들게 만드는 게 중요하거든요.


재미있는 건, 양말이라는 게 원래는 그저 발에 신는 실용적인 아이템이었잖아요? 근데 우리는 이걸 누군가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바꾸고 싶었어요. 단순히 필요를 채우는 제품이 아니라, 갖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디자인에 더 공을 들이고, 제품마다 특별한 스토리를 담으려고 해요.


그런 면에서 최근에 시도한 변화가 있어요. 원래는 얇은 원사로 피부에 밀착되게 만드는 걸 고집했는데, 올해 처음으로 루즈핏 양말을 선보였습니다.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보타만의 특별함을 담아내려 노력했어요. 그랬더니 생각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저건 꼭 가져야 해'라는 반응을 보여주셨죠. 이런 경험을 통해 또 하나 확신하게 됐어요. 양말도 충분히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 있다는 걸요. 앞으로도 이런 특별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시도들을 계속해볼 생각이에요.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하셨는데, 성공적인 협업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게 가장 중요해요. 단순히 두 브랜드의 로고를 섞거나 서로의 스타일을 조합하는 정도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전문성을 통해 정말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저희가 했던 협업들을 보면 그런 면이 잘 드러나요. 분더샵이나 포터리 같은 패션 브랜드들은 저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디자인 방향을 제시해주셨어요. 클래식한 남성복으로 유명한 바스통과 작업할 때는 전통적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법을 배웠고, 구두 브랜드 버윅과의 협업에서는 신발과 양말의 조화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죠.


포터리와 보타의 협업 제품 (사진: 포터리)


매 협업마다 '아, 양말을 이렇게도 디자인할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돼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보타라는 브랜드도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죠. 결국 좋은 협업이란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주면서 함께 높이 날아오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이런 특별한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협업들을 이어가고 싶어요.



패션 브랜드 외에 다른 분야의 브랜드와도 협업을 진행하셨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스튜디오 지브리와의 협업이에요. 사실 처음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죠. 지브리 한국 총판인 대원미디어에서 먼저 연락이 왔는데, 그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판매할 특별한 상품을 찾다가 저희 양말에 관심을 가지셨다고 하더라고요.


결과는 정말 놀라웠어요. 6천 켤레가 완판됐거든요. 특히 카페에서 판매된 모든 지브리 콜라보 제품 중에서 양말이 가장 빨리,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해요. 패션 브랜드가 아닌 완전히 다른 분야와의 협업에서 이런 반응을 얻었다는 게 저희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죠. 양말이라는 제품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어요.


이런 경험들을 통해 저희는 더 큰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앞으로는 양말의 경계를 더 과감하게 넓혀보려고 해요. 다만 일시적인 관심을 위한 협업은 지양할 거예요. 브랜드와 브랜드가 만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그런 의미 있는 협업을 하고 싶거든요. 우리의 철학에 공감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들과 더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팝업스토어마다 매출과 반응이 다를 텐데요. 고객 반응이 가장 좋았던 팝업스토어의 특별했던 점은 무엇인가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특별한 기획이나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매출이 눈에 띄게 높았거든요. 지금도 온라인 매출을 보면 강남 지역이 압도적인 1위에요.


이 지역 고객분들은 자신의 취향이 확실하시더라고요. 신세계 강남점만 해도 VIP 고객이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만큼,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은 곳이잖아요. 양말 하나를 고르실 때도 그런 안목이 느껴져요. '이 정도 가격이면 다른 브랜드도 있는데..'라고 망설이시는 분들도 있지만, 품질과 디자인에서 차이를 느끼시면 주저 없이 선택해 주세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특히 강남의 젊은 직장인분들은 단순히 경제적 여유를 넘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데 관심이 많으시죠. 그래서인지 팝업스토어에서 처음 만난 고객분들이 저희의 고정 고객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트렌드에 민감하면서도 확실한 취향과 안목을 가진 이 지역 고객분들과 보타가 지향하는 바와 잘 맞아떨어졌죠.



보타를 브랜딩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철학이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포기했던 것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기능성에 집중했는데, 점차 깨달은 게 있어요. 아무리 좋은 기능성 양말이라도 고객이 '저거 갖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 선택으로 이어지기 어렵더라고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그래서 저희는 모든 사진 촬영을 내부에서 직접 하고 있어요. 10년 동안 양말 한 켤레를 멋지게 보여주기 위해 트렌디한 신발과 의류에 계속 투자했죠. 지금은 사무실에 신발 창고가 따로 있을 정도예요. 이렇게 찍은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고객분들의 반응이 정말 좋으시더라고요. 결국 양말도 패션의 한 부분이니까, 전체적인 스타일링이 트렌드에 맞아야 하거든요.


물론 품질은 여전히 중요해요. 다른 브랜드 양말의 판매가격이 저희 생산원가랑 비슷할 정도로 고집스럽게 품질을 지키고 있죠. 하지만 이런 품질의 차이는 실제로 신어보고 나서야 아실 수 있잖아요. 그래서 첫 구매로 이어지게 하려면, 매력적인 비주얼로 먼저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미국, 캐나다, 태국에서 특히 반응이 좋다고 하셨는데, 각 국가별로 소비자들의 선호도나 구매 패턴에 차이가 있나요?


국가마다 확실히 차이가 있어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스포츠 쿠션 양말을 특히 선호하세요. 운동할 때 신기 좋은 두툼한 쿠션감이 있는 양말이요. 반면 다른 국가들은 정장이나 비즈니스 스타일에 어울리는 양말을 더 많이 찾으시죠.


저희가 양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다 보니,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요. 특히 인사동 매장의 경우가 인상적인데요. 한글이 들어간 디자인의 양말이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3년 동안 팔던 제품이 인사동에서는 두 달 만에 완판될 정도였죠.


단순히 '한국에서만 살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서가 아니라, 보타만의 독특한 감성과 품질을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요. 양말을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닌 패션의 중요한 요소로 재해석하는 저희의 시도가, 해외 고객들에게도 새롭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



창업 이후 10년간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신 순간은 언제였나요? 반대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매일매일이 성취의 순간인 것 같아요. 특히 저희 직원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행복이에요. 6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 명도 퇴사하지 않았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이런 좋은 동료들과 함께 브랜드를 키워나갈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저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사실 사업이라는 게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죠. 매달 직원들 급여, 매장 월세, 다음 시즌 준비까지.. 밤에도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아요. 공황장애 약도 먹고, 수면제도 먹어가며 버티고 있죠. 그래도 매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매장으로 발걸음이 향해요. 직원들과 마주 앉아 새로운 기획을 얘기하다 보면 어느새 피곤함도 잊게 되고요. 아마도 이런 순간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과정이 힘들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직장 생활만 했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소중한 순간들을 많이 겪었거든요. 시야도 넓어졌고, 책임감도 커졌죠. 마치 부모의 마음처럼. 그래서 전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더욱 존경스러워요. 그분들은 자식이라는 더 큰 책임을 평생 안고 사시잖아요. 저는 그저 우리 직원들과 이 브랜드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 노력할 뿐이에요.



양말 브랜드 대표로서,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패션에서 양말이라는 아이템이 참 재미있어요. 전체 옷차림에 신경 쓰는 분들도 양말까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거든요.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게 저희의 도전이니까요.


매일 고민해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분들이 보타의 가치를 알아봐 주실까' 하고요. 큰 회사들처럼 무작정 광고비를 쓸 수도 없고.. 저희는 한 번의 마케팅 결정도 신중하게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두 가지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해요. 첫째는 디자인이에요. 보는 순간 '이건 내 거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해요. 그냥 예쁜 양말이 아니라, 내가 입는 옷과 신발을 완성시켜줄 단 하나의 선택지가 되어야 하거든요. 실제로 여성 고객분들은 이런 감정에 더 솔직하셔서,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마음에 드는 양말은 꼭 소장하고 싶어 하세요.


둘째는 실제 신었을 때의 경험이에요.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민 끝에 찾아낸 우리만의 노하우가 발에 닿는 순간의 그 느낌이요. 눈을 감고 신어도 이게 보타 양말이란 걸 바로 아실 수 있어요. 발을 감싸는 쫀쫀한 착용감, 하루 종일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되는 핏,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탄탄한 밀착감까지.. 이런 차이는 말로 설명하면 그냥 '좋다'는 식상한 표현에 그치지만, 직접 신어보면 바로 이해하실 수 있어요. 그래서 첫 구매 이후 계속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결국 진짜 퀄리티는 숨길 수가 없거든요.


사진: 인터뷰이 제공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도 매일이 불안해요. 하지만 이게 당연하다고 봐요. 자기 일에 온전히 책임을 진다는 건 그만큼 긴장의 연속이니까요. 그래도 이런 긴장감이 저희를 더 성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늘 깨어있게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만들어주니까요. 제가 꿈꾸는 건 단순히 '잘 나가는' 브랜드가 아니라, 진짜 양말의 가치를 아는 분들이 첫 번째로 떠올리는 브랜드가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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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큐터뷰는 조인후 작가님이 작성하고, 큐레터가 편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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