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파리 올림픽에서 성별 논란이 있는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만 켈리프라는 선수인데요. 지난해 세계여자복싱선수권대회 당시 국제복싱협회(IBA)에서 성별 적격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대회 출전이 금지됐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획득했기 때문이죠. 이와 관련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복싱협회 간에도 선수 참여의 기준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는데요. 국제 협회들 간에도 의견이 갈리니 스포츠 업계에서도 ‘공정성이냐, 포용성이냐’를 두고 의견이 나뉘었죠.
성소수자(LGBTQ+)에 대한 시선은 수십 년 동안 꾸준히 개선됐지만 여전히 대중 마케팅에 있어서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어떤 브랜드나 기업은 성소수자를 위한 마케팅이 긍정적인 효과를 낳지만, 어떤 곳은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거든요.
실제로 수많은 기업들이 꾸준히 성소수자들의 구매력, 즉 핑크머니의 성장성에 주목하면서 이들을 포용하고 다양한 광고 캠페인을 만들어 유입하려는 노력을 해왔는데요. 그러나 올해는 전반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성소수자를 위한 마케팅 캠페인이 어느 정도 위축이 되어 있는 환경입니다.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우리 기존 고객의 반응’인데요.
브랜드는 평판을 쌓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우리의 핵심 고객의 로열티를 높이는데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기존에 로열티를 가진 고객을 고려하지 않고 시류에 편승하기 위해 무리하게 마케팅 정책을 펼치면 반발을 사게 되죠. 그리고 강력하게 바인딩됐다고 생각하는 고객들이 떠나기로 결심하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훼손되고 쌓아 올린 평판도 쉽게 무너질 수 있어요.
대표적인 예로 세계 최대 맥주 제조업체인 앤하이저부시(ABI)의 경우 지난해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인 딜런 멀베이니와 협업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인쇄한 버드라이트 캔맥주를 선보였다가 곤혹을 치렀죠.
버드라이트는 앤하이저부시의 하위 맥주 브랜드 중 미국 내 판매량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으로 2001년부터 20년 넘게 1위 자리를 뺏긴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틱톡 팔로워 1천만 명이 넘는 딜런 멀베이니와의 콜라보 제품을 내놓으면서 버드라이트의 부동층 고객인 중장년층 남성 고객들에게 뭇매를 맞고 불매운동이 일어났죠.
앤하이저부시는 불매운동이 일어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매출이 26% 감소했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시가총액 50억 달러(6.6조 원)이 증발했습니다. 이 때문에 3위로 내려앉았다가 현재는 2위로, 1년이 지난 후임에도 여전히 1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사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이 기업은 대처 부분에서도 다소 미흡한 부분을 보였어요.
기본적으로 성소수자를 위한 마케팅을 펼칠 때 담당자들은 신중하게 기업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우리의 핵심 타깃 고객이 누구인지, 매출에 가장 큰 기여도를 차지하는 콘크리트층 고객을 먼저 분석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 전 기존의 핵심 매출 기여 고객들을 이해하는 것은 CRM마케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략이죠.
그러나 이들은 포용성(Inclusivity) 문제에 대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캠페인을 진행해 불매운동이 거세졌고, 마케팅 담당자를 경질하면서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해 성소수자 단체까지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기존 고객과 신규 고객 모두의 호감을 잃게 된 거죠. 그로 인해 지난해 2분기 매출도 10.5% 감소했고 소매 업체 매출은 14% 떨어졌습니다.
타깃(TARGET, 유통업체)도 기존 매출 기여도가 높은 충성 고객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트렌드를 쫓은 마케팅 캠페인을 펼쳐 불매운동이 일어난 사례가 있습니다.
타깃은 지난해 6월, 성소수자 인권의 달(LGBT Pride Month)을 맞이해 성소수자 디자이너를 고용해 제품을 만든 ‘2023 프라이드 컬렉션’을 선보였는데요. 선정적인 디자인과 문구가 적용된 아동용 상품이 포함돼 비난을 받았고, 고객들이 분노해서 타깃의 매장 진열대를 부수거나 직원을 위협하는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빅토리아 시크릿도 성소수자와 다양성을 포용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왔습니다. 과거에는 화려하고 고가의 언더웨어에 지젤 번천, 지지 하디드와 같이 바비인형 같은 몸매의 모델을 내세워 패션쇼를 진행했죠. 덕분에 매해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는 화두였습니다. 그러나 2010년 후반부터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공격받게 되고, 2019년부터는 패션쇼를 폐지하게 됐어요. 더불어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나 성소수자를 기용해 화보를 촬영하고 변화를 물색하죠.
그러나 빅토리아 시크릿의 변화는 기존 고객층의 혼란과 비판에 직면해 매출 급감으로 이어지죠. 2019년 빅토리아 시크릿의 연 매출이 75.9억 달러에서 2023년 61.8억 달러로 감소한 것 역시 마케팅 활동이 기존의 브랜드 철학과 깊이 연결되지 않고 단순 마케팅 차원에서 접근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진정성 부족으로 기존 고객도 외면하게 된 거죠.
빅토리아 시크릿 경영진은 올해 가을부터 패션쇼를 재개한다고 알렸으며 여성미를 강조하는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면서 쇄신하겠다고 밝혔어요. 한편, 국내에서도 2019년 오비맥주 카스가 서울퀴어문화 축제 기념 성소수자를 위한 인쇄 광고를 선보였다가 불매운동이 일어난 바 있습니다.
LGBTQ+ 마케팅을 잘하는 기업과 올해는?
물론, 성소수자를 위한 마케팅이 실패 사례만 있는 건 아닙니다.
애플(Apple)은 성소수자를 위한 마케팅을 꾸준히 해왔는데요. 6월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기간 동안에는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제품과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무지개색을 모티브로 한 애플워치 스트랩이나 배경화면을 출시하면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지지를 보여줬죠.
애플은 오랫동안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기업의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애플의 CEO인 팀 쿡(Tim cook)이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면서 애플의 성소수자 지지가 더욱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게 됐고요.
페이스북도 글로벌 기업으로서 오랫동안 ‘프라이드 캠페인’을 진행했는데요. 다양한 사용자들을 위한 프라이드 기능을 통해 LGBTQ+ 커뮤니티를 지지했습니다. 직접 프라이드 기능을 검색해 보니 기존의 프로필 사진 위에 다양한 무지개 이미지를 합성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사용자들이 프로필 사진을 무지개색으로 변경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연대의 메시지를 전달한 건데요. 페이스북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플랫폼이기에 다양한 문화, 지역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 성소수자 커뮤니티 연대를 강화할 수 있었던 케이스입니다.
이외에도 레고는 검정, 빨강, 주황, 녹색, 보라 등 11가지 색상 블록으로 구성된 LGBTQ 세트를 출시했습니다. 이 세트를 기획한 디자이너 매튜 애쉬튼은 광범위한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는 레고세트라고 전했는데요. 예를 들어 파란색, 흰색, 분홍색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보라색은 드래그 퀸, 검정색, 갈색은 다양한 인종을 포함한다고 얘기했죠.
젤리빈 브랜드 업체인 스키틀즈는 2024년 프라이드팩을 출시해 성소수자를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커뮤니티 구축 플랫폼인 밋업(Meet-up)과 협력해 ‘스키틀즈 LGBTQ+ 디렉토리’를 만들었죠. 이 디렉토리는 광범위한 LGBTQ+그룹, 이벤트, 리소스 등으로 구성해 전국의 친구들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의 성소수자 마케팅 활동이 펼쳐지고 있지만 올해는 다소 위축된 모양새입니다. 우리의 고객들에 대한 이해, 브랜드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성소수자 마케팅을 펼치지 못한 기업, 불매운동과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기업들을 중심으로 마케팅 예산이 감축됐거나 없어졌거든요.
예를 들어 버드라이트는 올해 프라이드 먼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십과 MMA 선수와의 파트너십에 대해 홍보했습니다. 타깃은 이미 작년 불매운동 이후 올해 프라이드 상품 컬렉션을 축소하겠다고 밝혔고요.
나이키의 경우 작년 ‘Be true’라는 프라이드 상품 광고를 게시했지만 올해는 프라이드 캠페인과 관련된 SNS 게시물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노스페이스도 2022, 2023년 드래그 퀸 패티고니아(Pattiegonia)와 협업해 ‘Summer of pride’ 시리즈를 진행했지만 올해는 이벤트도, 프라이드 컬렉션도 출시하지 않았고요.
이렇게 올해 성소수자 마케팅이 위축된 까닭에는 지난 몇 년 간의 정치 사회적인 환경 변화와 핑크워싱에 대한 비판도 존재합니다.
최근 몇 년 간 일부 국가에서 보수적 정치 세력이 강해지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권리 보호와 관련된 논의가 위축되는 모습이 보였죠. 또한 지역별·문화별 차이가 있다 보니 글로벌 기업들은 각국의 정서와 상황에 맞게 마케팅 전략을 조정해야 했는데요. 마케팅 복잡성의 증가는 기업에게 비효율적인 예산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략적으로 마케팅 예산 배분 측면을 고려하면 매출 기여도가 높은 핵심 타깃군에게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기업 입장에서 효율적인 마케팅 활동이라 생각할 수 있는 거죠.
핑크워싱 역시 이슈입니다. 핑크워싱이란 성소수자에 대한 권리의 증진보다 이윤을 목적으로 캠페인을 진행하고 상업적·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마케팅을 빗대어 표현한 말인데요. 성소수자 마케팅 활동이 보편화되면서 일부 소비자와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기업들이 진정성 있는 지지 없이 마케팅 목적으로만 이들을 이용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일부 기업들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고 비판이 이어지기도 했죠.
마케터의 시선
마케터의 시선에서 정리해 보면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브랜드 액티비즘은 브랜드가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성소수자 마케팅의 측면에서 기업의 브랜드 액티비즘은 단순히 제품 판매나 이미지 개선을 넘어 기업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진정성 있는 활동이 중요한데요. 성소수자 관련 이슈에 대한 지지가 일회성 캠페인, 6월 프라이드 먼스에만 집중하는 단기간 캠페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원 복지, 정책 개선, 공동체와의 협력 등 각 기업이 중심을 잡고 일관성 있는 기업의 메시지를 흘려보내야 합니다. 또한 각 지역의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고려해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정서를 고려한 현지화된 전략을 펼쳐야 하죠. 그러나 이런 브랜드 액티비즘을 기반으로 LGBTQ+ 마케팅 캠페인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으로 우리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브랜드 철학, 회사의 핵심 고객에 대한 분석이 매우 중요합니다.
앞서 타깃, 버드라이트의 사례에서 봤듯이 기존에 브랜드 로열티가 강한 고객 집단의 특성을 고려해 그동안 우리가 지향해왔던 마케팅의 메시지와 일치하는지도 꼼꼼히 따져야 해요. 기업의 뼈대는 성소수자를 위한 브랜드 철학이 안착되어 있지 않은데 무리하게 현재의 시류에 편승해 기존의 고객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자칫 브랜드 자체의 평판을 훼손하고, 콘크리트 고객의 이탈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성소수자의 시장은 커질 거예요. 세계 최초 성소수자 전문 운용사인 LGBT캐피털이 밝힌 데이터에 따르면 작년 LGBT+인구는 3억 8,880만 명이며 이들의 구매력을 4조 7천억 원으로 추산했습니다. 중국의 성소수자 인구는 이중 7520만 명이라고 밝혔고요. 이들의 구매력과 시장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한 핑크머니가 점점 커짐에 따라 기존의 글로벌 기업들은 해당 시장에 들어오기 위해 꾸준히 발을 담는 정책을 취하려 할 텐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핑크머니에 대해 핑크워싱이 되지 않도록 각 기업의 브랜드 철학,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깊게 살피고 우리 기업의 방향성에 따라 마케팅을 펼치는 거예요.
마케터의 입장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시장은 없고, 모두를 위한 마케팅 활동은 존재하지 않죠. 그렇지만 우리의 핵심 타깃에 대해 뾰족하게 마케팅해야 하며 깊게 들어가야 고객이 진정성 있게 받아들입니다. 브랜딩이라는 건 두꺼운 얼음 위에 망치를 두드리면서 깨는 것이 아니라 송곳으로 촘촘하게 깊게 들어가는 과정에서 고객을 이해하고, 고객이 우리에게 몰입하면서 로열티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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