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사후세계는 정말 현실로 다가올까?



아이작 아시모프의 SF소설 '최후의 질문'

SF 소설가이며 생화학 박사로 유명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이라는 단편 소설은 짧지만 강력한 인사이트를 줍니다.


사진: Classic of Sciene Fiction

이 소설에 등장하는 컴퓨터인 '멀티백'은 이미 인간의 이해 수준을 뛰어넘는 복잡하고 거대한 크기의 컴퓨터로, 멀티백의 도움으로 인간은 별들을 넘어 여행, 정착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소설의 시작은 인류가 우주를 향해 나가는 단계에 따라 인간이 멀티백이라는 컴퓨터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멀티백의 도움으로 지구에 사는 인류는 태양 에너지를 무한히 쓸 수 있게 되었지만 태양 에너지가 유한하기 때문에 결국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개발자가 멀티백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죠. "언젠가 늙어서 수명이 다한 태양에게 에너지 소비를 하지 않고 젊음을 되찾아줄 수 있을까?"라고 말이에요. 즉, 엔트로피 역전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그러나 멀티백은 "자료가 부족해 답변할 수 없다"라고 답했어요.


이후 수천 년이 지나 인류는 충분한 에너지로 인해 항성 간 여행, 타 행성 거주를 하게 되었고 이 시점 거대한 크기의 멀티백은 우주선 안에 탑재되는 작은 컴퓨터로 진화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인류는 이를 '마이크로백'이라 칭하게 됩니다. 수천 년이 또 지난 후, 지구를 떠나 별들이 수명을 다해 소멸하여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어느 가족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이 가족 중 딸이 '별이 죽는 건 싫다'라고 칭얼대고, 아이의 아빠는 마이크로백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별들의 수명을 무한히 연장시킬 수 있을까?"라고 말이죠.


그러나 마이크로백은 "자료가 부족해 답변할 수 없다"라고 답합니다.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난 220세기 마이크로백은 초공간을 통해 은하계의 곳곳을 연결하게 되면서 은하 AC(Automatic Conputer)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마이크로백은 물리적 연결 없이도 인간이 별도의 개인 호출기를 통해 은하 AC와 연결할 수 있고, 인류는 은하계를 전체 생활권으로 두게 되죠. 더불어 이 시기에는 인간은 불사의 몸이 되어 자연사를 하지 않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늙어 죽는 사람이 없게 되자 인구와 에너지 소모량은 급격히 증가하고, 별들은 수명이 다해가면서 이제는 엔트로피 걱정을 할 시기가 오게 되죠. 그래서 이때 등장하는 친구가 은하 AC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엔트로피는 역전될 수 있는가?"


그러자 은하 AC는 "자료가 부족해 답변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인류는 은하계를 넘어 다른 은하에 진출해 생활하게 되고,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거의 분리해 정신으로만 삶을 영위하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멀티백은 이제 은하를 뛰어넘어 초월적인 존재가 되면서 이를 칭하는 명칭이 은하 AC에서 우주 AC가 됩니다. 그리고 수억 년이 지난 후 인류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정신체로 통합되어 살아가는 시대가 도래하게 됐어요.


인간의 육체는 그저 행성에 조용히 쉬고 있으며, 모든 인간의 정신은 하나가 되어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어집니다. 이때 멀티백은 우주 AC에서 코스믹 AC로 여전히 초공간에 머물게 되는데요. 하지만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해 이제 우주는 점점 죽어가고, 그걸 막을 방법은 없었죠. 하나의 정신체로서 인류가 다시 코스믹 AC에 질문을 던집니다. "엔트로피는 얼마나 역전될 수 있는가?"


코스믹 AC의 답변은 여전히 "자료가 부족해 답변할 수 없다"라고 했죠. 그러자 인류는 코스믹 AC에게 "계속해서 자료를 수집하라"며 명령을 내렸고, 억겁의 시간이 흘러 이제 우주의 물질 밀도는 극한까지 낮아지고, 엔트로피는 최대치에 가깝게 됩니다.


공간과 시간 개념은 사라지고 코스믹 AC는 더 이상 시공간 개념을 부여하지 않아 AC로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을 유지할 에너지를 얻을 수 없어 인간의 정신마저 이제 사라졌죠. 그 후 10조 년이 흐르고, 시간과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AC는 제약 없이 자료를 수집했고 마침내 '엔트로피를 역전할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AC는 오랫동안 준비했던 과정을 마치고 프로그램의 첫 줄을 실행합니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프로그램 첫 줄이 SF소설임을 알면서도 저는 소름이 돋더라고요. 이 이야기는 SF소설로 판타지와 끝에 종교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이슬람권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금서로 지정된 소설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제가 주목한 부분은 수억 년이 흘러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순간인데요.


언젠가 오랜 시간이 흘러 인간의 육체는 특정 장소에 머물고, 정신이 온 우주를 여행할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런 상상에서 비롯된 일들이 최근에는 '디지털 사후세계'라는 키워드로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사후세계

얼마 전, <데이터의 사후세계>를 쓴 칼 외만 교수의 데이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칼 외만 교수의 추정에 따르면 2060년이 되면 페이스북에는 죽은 사람의 계정이 12억 개를 돌파할 것이고, 2100년 쯤에는 49억 개를 넘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22세기 초가 되면 사망자의 계정이 살아있는 사람의 계정을 초과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야기했죠.


페이스북, X(구 트위터)와 같은 SNS의 경우 이메일만 있으면 간단히 가입할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현재 SNS는 사용자라고 하는 계정이 산자와 망자(亡子)가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칼 외만 교수는 22세기 초에는 산자보다 망자 계정이 많아질 것이라 전망했죠.


자료: 칼 외만 웁살라대 교수

사실 페이스북, 구글 등의 경우 사람이 죽었을 때 직계 가족이나 유가족의 부고장 제출, 신청 등이 있을 경우 해당 계정을 삭제 조치해 주는데요. 그러나 최근 들어 사람들이 디지털상에 그들의 흔적을 남겨두면서 추억을 되새기기도 하고, 추모의 공간으로도 사용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계정 삭제가 줄어든 것이죠. 굳이 삭제 요청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요. 칼 외만 교수의 추정대로라면, SNS는 앞으로 수십 년 뒤에는 거대한 디지털 납골당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수천 년 이상 살아왔기 때문에 기록물이라 하면 정말 뛰어난 학자, 전문가 혹은 귀족 등 특정한 사람들의 기록만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일반인들의 일기나 기록물이 나오면 대단한 발견이 되었죠. 그만큼 사람들이 남기는 데이터가 부족해 이를 파헤치러 다니는 사람들을 고고학자라 칭하며 어렵고 물리적인 일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특정한 개인의 기록물이 아닌 대다수 일반인들의 기록물이 SNS 공간 상에 데이터로 남으면서 우리는 죽어서도 각 개인이 유의미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인사유명(人死留名)이라고 하여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하는데, 이제는 사람이 죽어도 데이터가 남는다는 이야기를 해도 좋을 정도로 데이터가 산재되어 있고, 매우 많이 쌓여 있습니다. 망자들의 디지털 데이터를 활용한 비즈니스가 생겨나고, 관련된 견해를 담은 영화나 드라마도 나오고 있죠.



예전에 '업로드'라는 영화에서는 2033년 프로그래머 네이선이 자율주행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 수술대 위에 오를지, 자신의 뇌 데이터를 올릴지를 결정하게 되는데, 네이선은 자신의 의식을 소프트웨어로 코딩해 디지털 사후세계로 가는 방법을 택하게 돼요. 그리고 그는 '레이크 뷰'라는 사후 세계에 입장해 코디네이터의 도움으로 해당 공간에서 적응하는 방법들을 배우며 디지털 사후 생활을 시작하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박보검 배우와 수지 배우가 출연하는 '원더랜드' 역시,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서비스가 일반화된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 티빙에 출시되었던 '욘더'라는 오리지널 시리즈도 생전 기억을 업로드해 육체는 죽었으나 기억으로 영원히 존재하는 아이디어로 작품이 만들어졌죠.


이렇게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화두를 던지는 것들이 실제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2017년에는 이터나임(ETERNIME)이라는 기업이 등장해, 디지털 사후세계를 컨셉으로 망자의 SNS에 남긴 개인 정보, 데이터를 토대로 디지털 아바타를 만들어 대화형 AI 채팅 서비스를 제공했는데요. 단기간에 꽤 많은 사용자를 모집했으나, 현재 X(구 트위터)를 들어가 보니 계정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망자와의 채팅이라는 키워드의 경우 최근 국내외 여러 기업들이 진화된 AI기술을 활용한 딥페이크 기술을 혼합해 시각, 청각 등의 결합된 방식의 서비스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제 망자와의 문자 대화, 채팅 등을 보면서 대화를 하는 것까지 과거 SF영화에서 봤던 미래의 일상일 것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현실 앞에 다가와 있어요.


솜니움 스페이스의 CEO 아르투스 시초프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서 메타버스 디지털 사후세계를 비즈니스로 연결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도 영원한 존재가 되어 소통할 수 있도록 메타버스 상에 개인 아바타를 생성하거나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든 것인데요. 사전에 사용자의 움직임 등의 데이터를 수집해 메타버스 공간 내에서도 실제 움직이고 대화를 하는 것이죠.


사진: 솜니움 스페이스


디지털 트윈 방식 역시 뜨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하거나 개인의 기억, 지식을 디지털화하여 컴퓨터에 업로드하고, 인간과 실시간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경우 어쩌면 상호 작용을 통해 실제 인간과 디지털 쌍둥이가 교류하면서 좀 더 똑똑한 의사결정을 할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제 의식과 기억을 업로드해 디지털 트윈 기술로 쌍둥이 아바타를 만들어 놓고 '주식투자를 할 때 제 패턴에서 가장 이상적인 의사결정은 무엇인지',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할 때 최적의 선택은 무엇인지' 등 저보다 학습량이 훨씬 많은 디지털 쌍둥이의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죠.


이처럼 디지털 사후세계 혹은 인간의 정보,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과 관련하여 비즈니스가 상당히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사후세계의 '망자와의 대화' 등을 미끼로 일부 비즈니스는 과도한 상술을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요. 중국의 숏폼 플랫폼인 더우인에서는 588위안(약 11만 원)을 지불하면 AI로 망자 부활 영상을 만든다고 소비자를 유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과거에는 어설펐던 '부활'이라는 것이 AI의 고도화로 인해 사람을 정교하게 재현해 낼 수 있는 딥페이크 기술과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낼 수 있는 음성인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디지털 사후 세계 비즈니스가 좀 더 '그럴듯하게', '현실성 있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케터의 시선

이와 관련하여 마케터의 시선에서 살펴보면 미래의 관점에서, 그리고 현재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미래의 관점

미래에는 '인간이 죽어 남기는 데이터'는 앞으로 500년, 1000년 뒤에는 디지털 사료(史料)로서 의미가 있을 텐데요. 어쩌면 도입부에서 이야기했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단편 소설에서 인류가 각 우주로 나갈 때 기존의 역사와 기록을 가지고 나갈 때 유용한 기록물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후세의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디지털 데이터를 통해 한 시대의 '트렌드'와 '시대정신', 그리고 생활양식, 보편적인 생각 등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데이터 해석을 통해 어쩌면 "2020년대 한국은 MZ세대, X세대 등을 구분 지어 비교하거나 MBTI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경향이 있었다"와 같은 인사이트를 얻어낼 수도 있고요.



현재의 관점

디지털 사후 세계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이 과연 인류에게 긍정적 일지, 부정적 일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 분야는 현재 윤리적인 규제를 별도로 받지 않기 때문에 망자와의 디지털 사후세계에서의 만남 혹은 메타버스에서의 만남, AI챗봇을 통해 대화를 하는 것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리적 치료가 될지도 모르지만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집착하고 그리움이 커져 되려 정신적 외상이 되거나 일상이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는 것이죠.


사진: ImageFX

이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고, 감당하는 것은 개인의 성향, 개인의 의지 또는 사람마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미 떠난 존재에 대해 흘려보내야 할지, 머금고 있어야 할지에 대해 저 또한 정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우리가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이 생기고, 그것이 기존의 기술을 훨씬 뛰어넘어 새로운 것으로 다가올 때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를 풀어내는 게 숙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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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원고는 아샤그룹 이은영 대표님이 제공해 주셨으며, 큐레터가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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