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했는데 내 자리가 사라졌다

새로운 곳의 일은 캐릭터 IP를 제품화하여 다양한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진 일은 '곰돌이 푸'의 마케팅이었어요. 푸는 누구나 알지만, 관련된 제품이나 비즈니스 규모는 미미했고, 그걸 키우는 게 미션이었죠.

기존에는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캐릭터 제품을 판매하고, 프로모션하는 형태였는데요. 마트와 관련하여 아무리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려 해도 잘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두 가지를 바꾸고 시작하기로 합니다. 마트라는 무대를 바깥으로 꺼내고, 마트에 오는 손님에서 캐릭터를 찾아오는 팬으로 만들기로요. 

회사에 곰돌이 푸의 팝업을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였죠. 가뜩이나 많지 않은 푸의 제품으로 팝업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난이도 있는 미션이었어요. 게다가 이미 마트라는 안전장치도 있었고, 2010년대 후반이었으니 지금처럼 팝업스토어가 대중화되어 있지도 않은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푸로 진행하는 국내 첫 캠페인이니 만큼 데뷔전을 기존과 다르게 만들어야 앞으로도 계속해서 확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반드시 기존에 없던 고객경험이 필요하다고 설득했죠. 결국 작은 예산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태원 언덕 골목길의 작은 카페였어요.

어떻게 됐을까요?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찾아주기 시작했어요. 푸를 좋아하는 숨은 팬분들, 그리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찾아주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줄을 서야만 들어갈 수 있는 핫한 곳이 됐죠. 언론에도 소개되면서 연장의 연장을 거듭한 끝에 자그마한 카페에 4만 명이 넘게 찾은, 성공적인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푸는 세상에서 더 자라날 수 있게 됐어요.

그 이후로는 패션쇼, 슈퍼마켓, 레이저쇼 등 매번 다른 무대와 테마로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습니다. 디즈니는 한국 곳곳에서 많은 팬을 만나며 브랜드를 더 키워가게 됐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나는데요. 이전에 속해서 일하던 채널 사업부가 사라지게 됐습니다. 어느새 캐릭터와 IP의 시대가 왔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는 미리 다가오는 변화를 대비해서 저라는 인력을 앞으로 더 중요한 곳에 새롭게 배치했던 거였어요. 덕분에 새 시대에 맞는 좋은 타이밍에 커리어 전환이 될 수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