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을 타면 적막하죠. 고개를 숙이고 주무시는 분도 계시지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저도 그렇고요. 그래서인지 가끔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 괜히 멋있죠. 그런데 최근에는 이 멋쟁이들이 늘어나는 듯 보여요.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을 자제하는 ‘디지털 디톡스’도 그렇고, 독서모임이나 러닝크루 등 오프라인 활동들이 활발해졌죠.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라이프스타일을 ‘언플러그 시크(Unplug Chic)’라 일컫는데요. ‘디지털 기기 대신 오프라인 활동을 즐기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어딘가로 이동할 때, 혹은 자기 전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던 경험이 있잖아요. 이게 반복되면, 중독이라 느끼면서도 쉽게 끊기 어려워요. 최근 기업들은 이를 활용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죠.
지난 4월, 핀란드 휴대폰 제조업체 ‘HMD’, 네덜란드의 맥주 브랜드 ‘하이네켄’ 그리고 미국 의류회사 ‘보데가’는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폴더폰 ‘보링폰(The Boring Phone)’을 출시했어요. 소셜네트워크를 지원하지 않는 이 휴대폰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직접 만나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 만들어졌다고 해요.
이어서 하이네켄은 10월, 스마트폰의 알림을 차단하고, 카메라를 저화질로 설정하는 ‘Boring Mode’ 앱을 출시했는데요. 라이브 콘서트와 같은 행사에서 촬영보다는 기억에 남겨뒀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에요. 실제로 얼마 전, 데이식스의 콘서트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장장 3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하는 팬을 보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라이브를 온전히 느끼면 어떨까 생각도 들더라고요.
국내에서도 통신사들이 디지털 디톡스 마케팅을 펼치고 있어요. LG유플러스에서 진행한 스마트폰 없이 식사와 대화를 나누는 ‘노 폰 다이닝’ 행사가 대표적이죠. 이외에도 스스로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기 위해 일정 시간 동안 스마트폰 자체를 가두는 ‘스마트폰 감옥(a.k.a 금욕상자, 몰입상자..)’ 제품도 많이 출시됐어요.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뇌 썩음(brain rot)’이라고 해요. 사소하거나 하찮게 여겨지는 자료를 과도하게 소비해서 정신적, 지적인 상태가 퇴보하는 걸 뜻하는데요. 저급한 온라인 콘텐츠, 특히 소셜미디어의 과잉 소비로 초래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는 뜻으로 활용하는 단어라고 해요. 다소 자극적인 단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스마트폰의 악영향이 와닿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 주말에는 지인과 디지털 기기와 멀어진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