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이다
원래는 옛 인물이 현재 인물보다 낫다는 의미인데요. 요즘에는 옛 것이 더 좋다는 느낌으로 두루 쓰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이니, AI니 최근 시대가 급변하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받은, 대략적으로 90년대생 이상 세대들은 옛 추억에 대한 향수를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마침 얼마 전, 유퀴즈에 2NE1이 출연하는 걸 봤는데 괜히 울컥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때 그 시절 추억의 롤리팝 광고라든지, 산다라박의 특이한 머리스타일이라든지 다시 생각나기도 하더라고요. 무려 8년 만에 재결합해서 투어를 다니는 것 같던데 어쩜 10년이 넘은 노래들이 아직까지도 트렌디하고 좋았습니다. 외운 것도 아닌데 가사가 생각이 막 나고요.
그만큼 그 시절의 2NE1은 인기도 많고 핫한 걸그룹임에는 분명했습니다. 실력도 좋았고 컨셉도 특이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2NE1을 보면서 그때 그 시절의 향수를 강하게 느끼는 거더라고요. 반가웠죠. 옛 노래들을 다시 듣는 불후의명곡이나 슈가맨이 꾸준한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죠. 이걸 이용해서 상품화하는 게 향수 마케팅? 복고마케팅? 이라고도 하던데 어쨌든 최근 재결합하는 걸그룹이 느는 것 같아요. 트렌드 같기도 하고요.
재결합하는 걸그룹
2NE1은 2022년 미국의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완전체 무대를 선보인 바 있는데요. 당시 컴백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다가 데뷔 15주년을 맞이한 올해, YG엔터테인먼트와 협력해 아시아 투어를 진행해요. 멤버들이 각자 다른 소속사인데다가, 2NE1이라는 이름으로 유료화 사업을 벌이려면 YG와의 협업이 필수적이었다고 하죠.
YG입장에서도 2NE1와의 협력은 호재였어요. 블랙핑크 의존도가 높은 YG는 올해 초 솔로 재계약 불발로 인해 주가가 크게 하락했고, 신인 베이비몬스터는 아직 성장하기엔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그 빈 공간을 2NE1으로 메꿀 수 있던 거죠. 그리고 탄탄한 팬덤을 갖춘 아이돌은 소속사 입장에서 안전하고 또 화제를 유발할 수 있어요.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존재 같은 느낌이죠.
이외에도 여자친구(2021년 종료), 러블리즈(2021년 종료), 피에스타(2018년 종료)의 재결합 소식도 있었어요. 특히 피에스타의 멤버 차오루는 중국에서 라이브커머스로 돈을 모아 '짠해'의 저작권을 직접 구매해 팀의 재결합을 추진했다고 해요. 이들의 컴백은 해체 당시 팬들의 아쉬움을 해소해주면서도 다른 그룹들의 재결합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어요.
원래 아이돌 '7년 징크스'라는 말이 있었잖아요. 과거 소속사와 아티스트의 불공정계약에 대한 여러 사건 때문에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전속 계약 기간을 최대 7년으로 제한하는 표준계약서를 만들면서 등장한 개념이죠. 게다가 점점 어려지는 아이돌 연령대까지 고려하면 7년을 넘게 활동하는 경우가 드물어졌어요. 이 때문에 7년이 지나면 해체가 되는 분위기로 별도의 그룹으로 활동하거나, 솔로 가수 혹은 배우로 나아가는 등의 행보가 당연시되는 느낌이었죠.
그런데 최근 걸그룹 재결합 소식이 지속적으로 들려오고 있고 무엇보다 다시금 팬들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의지, 완전체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의 염원을 이뤄준다는 점에서 관계가 더 끈끈해지는 모습이에요.
걸그룹은 아니지만 핫한 컴백 소식은 또 있죠. 지드래곤이 7년 만에 돌아왔어요. 신곡 ‘파워(Power)’는 공개되자마자 실시간 음악차트와 유튜브 인기순위 상위권을 차지했고요. 컴백 전에도 트렌드의 아이콘이긴 했으나, 파워의 퍼포먼스 비디오 촬영 현장 비하인드 컷에서 신고 나온 만 원 대의 지압슬리퍼가 화제가 돼 일부 판매처에서는 품절되기도 했어요. 파급력이 어마어마하죠. 더불어 빅뱅의 컴백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클래식 IP의 힘
가요계의 컴백 열풍 이전에 옛 것들이 휘몰아친 업계는 또 있어요. 바로 게임인데요. 국내 게임사들은 과거 흥행했던 IP들을 신규 서버, 모바일 등으로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옛메(옛날 메이플)’의 인기가 심상치 않았죠. ‘메이플스토리 랜드’는 넥슨의 창작 놀이 플랫폼 ‘메이플스토리 월드’에서 일종의 ‘유즈맵’ 형태로 제공한 서버였는데요. 넥슨의 공식 서버가 아님에도 게임 방송 플랫폼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했어요. 넥슨은 ‘바람의 나라’, ‘큐플레이’ 등의 IP도 제공해 클래식 게임들을 구현하며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있죠.
한편, 블리자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와우 클래식)’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고, 엠게임은 원작 ‘귀혼’을 계승한 모바일 버전 ‘귀혼M’을 11월 21일 출시 예정이에요. 사전예약에 이미 100만 명 이상이 몰렸다고 하죠. 이외에도 최근 게임사들은 클래식 IP를 이용해 신작을 출시하는 등 원작을 가져오면서 피드백을 반영해 이용자 편의성을 높이는 전략을 펼치고 있어요.
이는 신작의 부진에 대응하는 수익성의 역할이자, 흥행성을 입증한 클래식 IP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기도 해요. 실제로 넥슨과 크래프톤을 제외한 국내 게임사들은 지난해 어려움을 겪었어요. 국내 3대 게임사라고 불리는 엔씨소프트는 지난 3분기 143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12년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했고요.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클래식 IP를 활용하는 것도 이런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어요.
오히려 천천히, 반대로
올해 핫한 트렌드 중 하나가 ‘텍스트힙’이잖아요. 생각해보면 저도 어느 순간 책을 읽겠다며 도서관을 들락날락하게 되더라고요. 긴 롱폼 영상도 꼭 10초씩 넘기게 되고, 숏폼 영상을 80~90분씩 볼 정도로 푹 빠진 현대인들이 진득하게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러니한 트렌드가 텍스트힙이죠.
그렇지만 지난 몇 년 간, 불었던 레트로 열풍과 최근 클래식한 옛 것들이 돌아오고 있는 현상을 보면 텍스트힙은 예견된 트렌드라고도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빠른 세상의 움직임에 오히려 천천히, 반대로 가고 싶은 심정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복고(레트로) 문화 관련 인식 조사’의 응답자 72.9%는 복고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옛날 노래, 옛날 포장 그대로인 제품 등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었죠. 또한 응답자의 상당수는 ‘현대의 삶은 과거보다 팍팍해진 것 같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과거에 행복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등의 응답에 깊은 공감을 보였다고 해요.
앞으로는 더 다양한 영역에서 옛 것들이 부활하거나, 재탄생해서 우리들의 추억을 새록새록하게 할 것 같은데요. 여러분도 어릴 적 좋아했던 노래나 가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게임 등 추억이 남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