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이커머스 미정산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국내 종합몰 앱 사용자 순위 6위 티몬과 7위 위메프가 판매자에게 판매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판매자와 구매자는 물론 금융권, 전자상거래 업계, 여행 및 공연·전시 등 여러 산업계로 연쇄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했던 셀러들은 자금 압박으로 인해 사업 운영에 차질을 빚으며 줄도산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고요. 소비자들도 구매한 상품을 받지 못하거나 며칠 남지 않은 여행이 일방적으로 취소당하는 등의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최선의 해결책은 티몬과 위메프가 정산과 취소·환불을 모두 처리해 주는 것인데요. 단기간에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타임라인으로 보는 미정산 사태
미정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드러나게 된 것은 여러 쇼핑몰 운영자 커뮤니티에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 등에서 정산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다수 등록되면서부터입니다. 이 내용이 기사화되고 공론화되자 티몬은 본사인 큐텐이 싱가포르에 있어서 정산을 위한 시스템을 통합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며, 일부 셀러에만 정산 지연이 있었을 뿐이며 수일 내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때만 해도, 시스템 오류로 인한 것이니 그럴 수 있다면서도 앞서 7월 8일부터 티몬캐시와 상품권을 대폭 할인 판매하는 것은 혹시 부족한 정산 대금을 마련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것 아니냐는 의문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미정산 문제가 불거졌고, 자금 압박을 견디다 못한 판매자들이 고객에게 환불 및 취소를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여행업계에서 취소와 환불 관련한 이슈가 많았습니다. 항공, 숙박 상품 특성상 고객들은 보통 여행 2~3개월 이전에 예약을 완료하게 됩니다. 티몬에 비용 지급을 완료한 것이죠. 그러나 여행사가 대금을 정산받는 시점은 고객이 여행을 출발하고 나서 2개월가량 지난 이후가 됩니다.
티몬이 정산을 못해주니 여행사는 항공사나 호텔에 지급할 돈이 없어서 고객에게 환불/취소 안내를 하였고, 여행이 임박한 고객들은 환불도 안되고 여행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항공이나 호텔을 찾는 것도 시간과 비용의 문제로 발만 동동 구르게 된 것입니다.
티몬사태 여파, 어디까지 불똥 튀나
지난 5월 판매분부터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판매자들은 판매대금을 받지 못해 줄도산 위기에 처했습니다. 판매 시점과 정산 시점의 차이가 큰 여행업계는 물론이고, 용산 전자상가를 중심으로 PC부품 및 스마트폰, 노트북 등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들은 약 700억 원대의 미지급금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백화점과 홈쇼핑 등 유통업체들도 대금정산 문제로 티몬과 위메프에서 이탈했죠.
판매자와 구매자 외에도 이커머스 산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들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PG사와 카드사, 은행 등 금융권입니다.
내 돈은 어디서 돌려받지? PG사 vs 카드사
판매자로부터 결제 취소 안내를 받은 소비자들은 대거 카드사로 달려갔습니다. 결제한 돈을 환불하기 위해서 결제했던 카드사에 결제취소 요청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카드사들은 난감한 상황입니다. 카드사는 티몬과 계약해서 카드결제한 것이 아니라, PG사와 계약하고 결제를 합니다. 큐텐과 직접 계약한 것이 아니라서 PG사 동의 없이는 마음대로 결제 취소해 줄 수 없는 것이죠. 카드사가 결제를 취소하면 PG사가 먼저 환불해 주고, 나중에 티몬으로부터 다시 돈을 받는 구조입니다.
이제 PG사에 연락해서 결제 취소 문의를 합니다. PG사는 카드사로부터 받은 돈에서 수수료를 제외하고 티몬에 모두 지급 완료했다는 입장입니다. 환불과 취소는 돈을 가지고 있는 티몬과 위메프가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죠. 무조건적으로 PG사가 환불과 취소를 해준다면 PG사마저도 지급불능이 되어 이커머스 생태계 전반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쇼핑몰이 PG사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은 이런 리스크를 부담하기 때문이라며, 우선 고객에게 PG사에서 먼저 환불을 진행하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티몬과 계약한 11개 PG사들은 결제 취소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환불해 준 돈은 차후 티몬과 위메프에 받아야 하는데요. 이미 자본잠식에 빠진 상태이며 모든 자산을 팔아도 부채를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 받을 길은 요원해 보입니다. 심지어, 쇼핑몰이 PG사에 돈을 입금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 가입하는 ‘이행보증보험’도 없어서 모든 손실은 PG사가 떠안을 것으로 보입니다.
판매대금 선정산 서비스 중단하는 은행과 핀테크
선정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과 핀테크 업체들도 난감해졌습니다. 선정산 서비스는 셀러가 제품을 팔고 나면 정산까지 쇼핑플랫폼에 따라 길게는 60일 이상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티몬도 60일 이상으로 알려졌죠. 이 기간 동안 현금흐름이 막혀 사업 운영이 어려운 셀러들은 은행이나 핀테크 업체를 통해 선정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플랫폼으로부터 60일 후 돈을 받을 권리인 매출채권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입니다.
티몬, 위메프에서 활동하는 셀러들 다수가 은행이나 올라와 같은 선정산 서비스를 통해서 자금을 먼저 정산받았습니다. 이후 은행과 핀테크 업체는 해당 정산금을 티몬과 위메프로부터 받아야 하는데 현재 모든 미정산 대금 지급이 무기한 중단된 상태라 고스란히 손실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은행과 업체들은 선정산 대출 등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사용 중단되는 상품권
티몬·위메프는 정산 지연 사태 이전에 티몬캐시뿐만 아니라 타사 상품권을 큰 폭으로 할인하여 판매해왔습니다. 그러다 정산 지연과 함께 상품권 거래도 함께 중단되었는데요. 이에 따라 온라인 게임, 편의점, 온라인 쇼핑몰 등에 자주 사용되는 컬쳐랜드 상품권과 해피머니 상품권 등의 사용이 중지되었습니다. 정산이 안되기 때문에 오프라인 결제도 막히고, 온라인에서 페이코 포인트와 같은 간편결제 포인트 전환도 모두 막힌 것이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컬쳐랜드 상품권은 전체 발행 금액 770억여 원을 지급보증보험으로 관리하고 있어 보상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해피머니는 선불업체로 등록되어 있지 않고, 지급보증보험도 없어서 구매자와 셀러에 대한 보상 방안이 없는 상황입니다. 거기다 해피머니는 완전자본잠식 상태라서 상품권에 대한 보상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이번 여파로 상품권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전반적으로 크게 하락한 모습입니다.
무리한 나스닥 상장 추진이 원인
이렇게 갑작스럽게 큐텐 그룹에 유동성 문제가 발생한 것은 큐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추진한 것이 원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큐텐익스프레스는 큐텐의 자회사로, 큐텐 그룹의 물류를 담당하는 유통기업이죠. 이 기업의 실적을 늘려서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위시 등 여러 쇼핑 플랫폼을 인수해서 거래 규모를 키워왔죠. 이렇게 거래되는 물류량을 늘려서 큐텐익스프레스에 몰아주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수한 플랫폼들은 이미 만년 적자에 자본잠식 상태였고, 특히 최근 북미와 유럽 기반의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인 위시를 1억 73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큐텐 그룹 내 자금흐름에 문제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인수대금이 부족해 티몬과 위메프에 있는 판매자 정산대금까지 끌어다 쓴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었는데요. 최근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위시를 인수할 때 동원한 현금 400억 원에 위메프 및 티몬의 미정산 대금이 들어가 있었지만 한 달 이내 상환했으며 판매대금 돌려 막기를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은 무리한 인수합병의 여파가 큐텐 그룹 전체에 악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커져가는 이커머스 신뢰도에 대한 불신
오픈마켓과 같은 이커머스 생태계는 안정적인 금융 시스템 기반을 갖춰야만 만들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처럼 고객에게 물건을 팔고 즉시 돈을 받는 형태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여신거래가 필수입니다. 그래서 이번 티몬과 위메프의 미정산 사태는 이커머스 업계에 핵폭탄을 터뜨린 것과 같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국내 5위, 6위 하는 대형 플랫폼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 규모가 더 작은 중소형 오픈마켓, 플랫폼에 대한 셀러들의 신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연 거래액이 7조 원에 달하는 곳도 이렇게 문제가 됐는데, 더 작은 플랫폼들도 언제든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인식이죠. 최근 급작스럽게 폐업하고 판매자들에게 정산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잠적한 문구몰 바보사랑의 경우도 있었죠.
또, 대규모의 자금을 정산일 이전까지 플랫폼이 보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법적인 보호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짧게는 수 일에서 길게는 60일 이상 정산대금이 플랫폼에 묶여있는데요. 대기업 유통사에는 판매된 달의 말일을 기준으로 40~60일 이내에 판매대금을 정산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커머스의 경우 법 규정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판매대금을 어떻게 보관하고 있고, 혹시 직원 월급이나 회사 운영비 등 다른 곳에 유용한 것은 아닌지 관리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셀러들은 판매 시점으로부터 2~3개월 후에 대금 지급하는 후정산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업계의 후정산 방식이 바뀌거나 정산 대금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라도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계속 대규모의 적자를 내면서도 긴 정산주기를 활용해 위태롭게 운영하는 오픈마켓 방식에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매년 20% 이상 성장해 온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세도 확연히 둔화되는 상황에서 계속 성장하지 못하는 쇼핑 플랫폼은 삐끗하는 순간 티몬·위메프처럼 깊은 수렁에 빠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