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찾던 관광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외국인 관광객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찾았는데요. 여행과 호텔 업계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면서 실적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반면, 면세점 업계는 울상입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에 들어와도 면세점을 찾지 않기 때문인데요. 대신 패션·뷰티 브랜드숍을 방문하는 것이 트렌드라고 합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서울에만 13개의 시내면세점이 있었습니다. '유커'라고 부르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화장품과 명품들을 싹쓸이해 갔죠. 하지만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면세점들의 문도 닫혀버렸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여행 수요가 늘고 있고, 관광 산업도 정상 궤도를 되찾고 있지만 유독 면세점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올해 1~4월까지 방한 외국인 수를 살펴보면 약 486만 6천여 명으로 코로나19 이후 분기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전년도 1~4월 방한 외국인 수 대비 87% 늘었지만, 같은 기간 면세점의 외국인 매출은 약 12% 늘어나는데 그쳤죠. 2019년 면세점 매출은 24조 8천억 원에 달했지만, 지난해 매출은 13조 7천억 원으로 반토막 났습니다.
이렇게 최근 면세점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여행 스타일의 변화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기존처럼 대형 버스로 함께 움직이는 단체 관광객인 '유커'보다는 개별 관광객을 뜻하는 '싼커'가 여행 트렌드의 중심이 되었죠. 단체 관광의 정석 코스였던 시내 면세점 대신 명동이나 성수, 홍대 등 국내 핫플레이스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에 주력 매장이 있는 현대백화점 면세점이나 용산 아이파크몰에 입점한 HDC신라면세점이 적자를 내고 있는 이유죠.
이렇게 면세점 떠나간 외국인 고객을 올리브영과 다이소, 무신사가 대신 사로잡고 있습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쇼핑한 품목에는 향수 및 화장품이 67.7%, 의류가 48.8%를 차지했는데, 이는 국내 기업들의 매출 성장세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어요.
관광객 사로잡는 올·무·다
큰 손인 해외 관광객들이 면세점보다 아웃렛이나 패션·뷰티 로드숍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붙잡기 위한 브랜드들의 행보가 바빠지고 있습니다. 주목해 볼 만한 곳은 올리브영, 무신사, 다이소입니다.
특히 K-뷰티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올리브영이 외국인 관광객 쇼핑의 성지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분기마다 진행하는 올영세일은 대표적인 K-뷰티 쇼핑 축제로 알려졌죠. 덕분에 올해 1분기 올리브영의 외국인 매출을 보면 지난해 1분기보다 263% 늘었습니다. 특히 중국인 매출이 673%로 가장 크게 증가했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동의 5개 매장과 홍대에 있는 6개 매장의 매출이 각각 101%, 48% 늘어났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트렌디하고 합리적인 가격과 좋은 품질을 자랑하는 국내 뷰티 브랜드들의 인기가 높았는데요. 국내의 대표적인 뷰티 브랜드 상품을 한 곳에서 구매할 수 있는 올리브영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패션 카테고리에서는 무신사가 K-패션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필수 쇼핑 코스가 되었습니다. 관광명소에 자리 잡은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이 SNS을 통해 입소문을 탄 것인데요. 무신사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오픈한 '무신사 스탠다드 명동' 매장의 외국인 고객 매출 비중은 5월 기준 45%를 기록했습니다. 오픈 직후인 3월만 하더라도 30.7%였으나 두 달 만에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으로 외국인 매출이 늘고 있습니다. 홍대점은 5월 기준 외국인 매출 비중이 30%를 차지했으며, 성수점은 지난 5월 기준 외국인 매출이 28.8%까지 증가했습니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해외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타 SPA 브랜드와는 달리 오프라인 매장이 한국에만 있는데요. 때문에 K-패션을 직접 경험하고자 하는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여행 수요가 회복되는 가운데 국내 패션 및 뷰티 브랜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어서 서울 명동이나 홍대, 성수 등 외국인 관광객들의 접근성이 좋은 곳에 위치한 매장들이 특수를 누리고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무신사는 한국관광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편의를 개선하기도 했는데요. 물품 구매 시점에 환급액이 차감된 금액으로 결제할 수 있는 즉시 환급 면세 서비스를 통해 출국 시 공항 내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는 등의 쇼핑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무신사는 패션 업계의 비수기인 여름 시즌에 상반기 대규모 할인 행사인 ‘2024 무진장 여름 블랙프라이데이’를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행사를 진행한 11일 간 누적 판매액 2천억 원을 돌파했고, 오프라인 플래그십 스토어 '무신사 스토어 홍대'와 '무신사 스토어 대구'의 총 누적 판매액은 전월 동기간 대비 60% 상승하며 내국인과 외국인 고객을 동시에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다이소도 K-뷰티와 패션을 한 번에 경험하면서, 가성비가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명동, 홍대, 동대문에 있는 다이소 매장의 방문객 중에서 외국인 비중이 50%에 달합니다. 김이나 라면, 커피 및 마스크팩, 화장품 등이 특히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덕분에 올해 1분기 다이소 전체 매장의 해외카드 매출과 결제 건수는 지난해 1분기보다 76%, 61% 각각 늘었고, 명동역점과 명동본점은 외국인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매장이었어요.
외국인에게 최고 인기 상품은 화장품과 식품이었는데요. 3∼4월 명동역점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구매한 상품은 화장품인 'VT 리들샷 300'이었고, 마스크팩을 포함한 화장품류가 4위까지 차지했습니다. 5위부터 7위까지는 식품류가 차지했습니다. 또, 다이소에서 대란템으로 떠오른 제품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어 해외 채널로 진출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가성비로 변화한 여행 트렌드
이렇게 뷰티·패션 중심의 오프라인 로드숍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여행 트렌드의 변화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전 세계적인 달러 강세로 인해 면세점에서 사는 것이나 해당 브랜드 매장에서 사는 것이나 가격적인 차이가 거의 없어지면서 관광객들이 면세점을 외면하고 브랜드 매장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또한, 글로벌 경기 악화로 인해 럭셔리 쇼핑보다는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가성비 쇼핑'이 대세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죠.
2024년 외래관광객조사 1분기 결과 보고서를 보면 외국인 관광객이 선호하는 쇼핑 장소로 로드숍을 꼽은 비중이 48.4%로 전체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어서 백화점, 대형 쇼핑몰, 면세점, 대형마트 순이었죠. 월간 기준으로 지난 3월에는 로드숍이 최초로 선호도 50%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많이 구매하는 상품은 향수·화장품이 67.7%로 가장 높았고 식료품 58.0%, 의류 48.8%, 신발류 14.3%, 가방류 11.6%가 뒤를 이었습니다. 특히 향수와 화장품, 식료품 품목은 2023년 1분기 대비 1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실제로 관련 기업들의 외국인 매출 증대로 이어졌습니다.
유통업계에서는 당분간 K-컬처 트렌드에 힘입어 패션과 뷰티, 식품 등 관련 산업과 브랜드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좋은 상품과 브랜드를 체험하고 자국으로 돌아가 국내 상품을 해외 역직구 플랫폼이나 현지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해 재구매한다면 자연스럽게 해외진출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