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을 파밍하다, 도파밍


재미있는 걸 싫어하는 분 계시나요? 저는 아직 재밌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 없는 것 같아요. 🤨 인간은 ‘호모 루덴스’ 즉, 본능적으로 재미를 좇는 존재라고 해요. 고대부터 인간은 동물의 뼈를 사용해 놀이를 했고, 이게 주사위 게임의 유래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예전부터 놀이를 통해 재미를 즐겼지만, 최근의 재미 추구 행동에는 특별함이 있어요. 일단 과거에 비해 재미를 주는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선택지가 많아졌죠. 거기에 맞춰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속성이 더 다양해지고 지속시간은 더욱 짧아지고 있는 추세예요.


최근 젊은 세대에서 ‘재미있다’, ‘흥미롭다’ 등의 표현이 ‘도파민 돈다’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어요. 그래서 2024 트렌드코리아 김난도 교수는, 이렇게 재미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재미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길 원하는 소비 행태를 ‘도파밍’이라는 트렌드 키워드로 정의했어요. 도파밍이란 ‘도파민(Dopamine)’과 ‘파밍(Farming)’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도파민을 파밍(수확)한다는 의미예요.


김난도 교수는 도파밍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는데요.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랜덤 상황이 선사하는 도파밍


첫 번째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재미예요. 예상치 못했던 일에 재미를 느끼는 건데요. 최근 SNS에서 유행하고 있는 ‘랜덤코디 챌린지’와 같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어요. 당사자조차 오늘 어떤 코디를 하고 외출하게 될지 모르는 이 챌린지는 우연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죠. 챌린지의 주인공이 눈을 가리고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그날의 코디를 결정하게 돼요. 우연히 훌륭한 코디가 나오기도 하지만, 서로 어울리지 않는 옷들이 매칭되어 엉뚱한 착장이 완성되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재미를 주고 있어요. 미국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는 ‘랜덤 음료 주문 방식’으로 재미를 더했어요. 손님이 메뉴를 정해서 주문하는 게 아닌, 직원에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로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거죠. 어떤 메뉴가 나올지 주문자도 모른다는 점이 바로 재미의 포인트예요. 보통 보편적으로 인기가 많은 음료를 내줄 법하지만 직원들은 진심으로 본인의 최애 음료를 내어주는데, 이게 랜덤이 주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어요.



상식 밖의 엉뚱함에서 만끽하는 도파밍


두 번째 유형은 상식을 벗어나서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될만한 행동을 하며 느끼는 재미예요. 남들이 보기엔 이상해 보일 수 있는, 일상적인 일들에서 벗어나 일탈 행동을 하며 나름의 해방감과 재미를 느껴요. 작년 8월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음악이 없는 사일런트 디스코 DJ 파티가 열렸어요. 보통 파티라고 하면 시끄러운 음악과 조명이 함께하기 마련인데요. 이 파티는 약 300명의 관객들이 모두 해드폰을 끼고 조용한 곳에서 춤을 췄어요. 이 파티를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엔 뭔가 이상해 보이겠지만, 엉뚱한 컨셉 덕분에 사일런트 DJ 축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었어요. 



무모한 도전으로 즐기는 도파밍


세 번째 유형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무모한 목표에 도전하며 느끼는 재미예요. 여기서 느끼는 재미는 두 가지인데요. 먼저 도전 과제 자체가 ‘저런 도전을 대체 왜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드는 유머러스한 소재예요. 그리고, 도전 과정을 지켜보는 자체로 스릴을 느끼는 거죠. 레드불의 마케팅은 도파밍을 이용한 무모한 마케팅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태국식 카페인 음료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하기 위해 익스트림 스포츠에 도전했어요. 2012년 인류 최초로 사람이 초음속으로 낙하하는 ‘레드불 스트라토스’를 성공시켰고, 이 도전은 당시 유튜브 라이브 방송 사상 최대 동시 시청자수 800만 명을 기록했어요.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성공시킨 레드불은 ‘스토리텔링’에서 더 나아간 ‘스토리두잉’ 개념을 마케팅에 적용하고 있어요. 



기괴하고 가학적인 스트레스 뒤에 찾아오는 도파밍


마지막으로, 고통과 공포를 느끼는 동시에 의외의 재미를 찾는 것인데요. 놀이공원에 있는 귀신의 집을 체험한다거나, 공포영화를 보는 것도 이런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예요. ASMR을 한 번쯤은 다들 보신 적 있으실 텐데요. 일반적으로 ASMR은 조용하고 평온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콘텐츠들이 많아요. 하지만 최근 여드름 압출, 내성발톱 제거, 귀 청소와 같은 기괴한 소재의 ASMR 영상이 인기를 얻고 있어요. 기괴한 모습이지만, 한 번 보면 다음 영상을 계속 보게 되는 기묘한 재미에 빠져들게 된다고 해요. 





사람들은 왜 갈수록 도파밍에 빠져드는 걸까요?

김난도 교수는 ‘재미’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점점 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어요. 과거부터 사회적으로 유희를 추구하는 놀이에 대해서는 생산성이 없다고 치부하고, 과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행위를 높게 평가해 왔어요.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 일과 놀이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유희와 과업을 양분하던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어요. 지친 일상에 위로받을 수 있는 놀이의 가치가 재평가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주된 매체의 변화에 따라 재미의 방식 또한 ‘문자언어’에서 ‘영상언어’로 발전하게 되었고, 재미 또한 빠르고 직관적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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