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 말을 고객들이 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쿠팡의 미션이 이제는 어느 정도 실현된 것 같습니다. 한 번이라도 쿠팡에서 물건을 산 사람이 2,042만 명이나 되었죠. 덕분에 쿠팡의 분기 매출은 8조 원을 넘어섰고, 2022년 3분기부터 5개 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도 30%를 향해 나아가고 있죠. 설립 후 처음으로 연간 기준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분위기도 좋습니다.
그러다 지난 12월, 쿠팡이 갑자기 세계 최대 명품 플랫폼인 ‘파페치(Farfetch)’를 인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약 6,500억 원을 투입해서 파페치를 인수하고, 쿠팡의 물류 역량과 결합해 520조에 달하는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것입니다. 인수 소식이 알려지면서 로켓배송으로 명품을 배송받을 수 있어 머스트잇, 발란, 트렌비 등 기존 명품 플랫폼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백화점의 핵심 경쟁자로 급부상할 것이라며 업계의 이목이 쿠팡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파페치라는 회사,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한때 기업가치 32조 원에 달했지만 2022년부터 쪼그라들기 시작해서 현재는 기업가치가 90% 이상 폭락한 상황입니다. 2022년에는 영업손실만 8억 5천만 달러에 달하면서 파산에 직면했다는 소식이 나올 정도였는데요. 쿠팡은 왜 이 적자투성이 기업을 인수했을까요?
명품 플랫폼, 파페치는 어떤 곳?
쿠팡이 왜 파페치를 인수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선 파페치라는 곳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파페치는 평소 명품에 큰 관심이 없던 큐레터 에디터는 처음 들어봤는데요. ‘매치스패션’, ‘마이테레사’와 함께 명품 직구 3대장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영국의 패션 플랫폼으로 2007년 설립되어, 당시 낯선 개념이었던 ‘온라인으로 명품을 산다’는 것을 실현한 곳이죠.
파페치는 명품 브랜드 제품을 유통하기 위해 브랜드사와 직접 계약하지 않고 유럽에 있는 오프라인 부티크들과 계약을 맺어 명품 물량을 확보하고 온라인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명품 브랜드와 직접 유통 계약이 어려워 명품 브랜드사의 1차 유통사인 부티크를 공략한 것이죠.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현재는 버버리, 구찌, 샤넬, 루이뷔통 등 1,400여 명품 브랜드를 입점시켰고, 한때 기업가치 32조 원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잘 나가던 파페치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온라인 쇼핑과 명품 소비가 활성화됐던 시점을 정점으로 가파르게 기업 가치가 하락했습니다. 줄곧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다 투자자들이 수익성 없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 시작하면서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한 것이죠. 코로나19 기간 동안 70달러가 넘었던 주가는 현재 0.03달러로 99.95% 하락한 상태입니다.
글로벌 1위 명품 플랫폼이 몰락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명품 브랜드들이 온라인 명품 플랫폼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샤넬, 에르메스와 같은 최상위 명품 브랜드는 브랜드가 직접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면 브랜드 가치 훼손을 막기 위해 파페치와 같은 소매점에서 판매를 꺼리는 것이죠. 이런 명품의 폐쇄적인 전략은 온라인 명품 시장 확대에 큰 제약이 되고 있습니다.
또, 무리한 사업확장과 기업 인수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명품 플랫폼의 해외 진출을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자했고, 현재 약 190여 개국에 진출한 상황입니다. 기업 인수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런던 부티크 업체, 온라인 운동화 플랫폼 등 여러 기업을 끊임없이 사들였죠. 매출은 늘어나고 있지만 이익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사업확장을 해왔습니다. 이런 이유들이 2022년 명품 업계의 전반적인 침체와 맞물리면서 급속도로 파산위기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끊임없는 성장이 필요한 쿠팡의 눈에 띈 파페치
이런 적자투성이 기업을 쿠팡이 약 6,500억 원을 들여서 인수했습니다. 쿠팡은 분기 매출 8조 원을 넘겼고, 5개 분기 연속 흑자에 사상 처음 연간 기준 흑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계획된 적자’라면서 끊임없는 투자로 항상 적자를 기록해 오던 쿠팡은 이제 국내 이커머스 시장 24.5%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성장 중인 쿠팡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새로운 성장동력인데요. 본업인 커머스가 잘되고 있지만 점차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중국 등은 전체 리테일 시장에서 이커머스가 차지하는 비율이 15% 정도라서 아직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인 반면, 우리나라는 이커머스 비율이 44%에 달해 이커머스 시장이 성장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때문에 앞으로 이커머스 시장에서 쿠팡의 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글로벌 진출을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성과가 미미한 편입니다. 일본은 진출한 지 2년여 만에 철수를 했고, 대만은 잠재력이 높아 미래를 기대하고 있으나 아직은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아직은 글로벌 영향력이 현저히 낮은 상황입니다.
쿠팡은 한계를 넘어 계속 성장하면서도 글로벌 진출을 모두 잡을 수 있는 파페치에 주목한 것입니다. 저단가의 생필품을 주로 판매하는 쿠팡과 달리 고부가가치의 명품을 판매하는 곳이며, 전 세계 190여 개국에 진출해 있어서 해외 매출을 높이는 전략에도 부합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고?
이번 인수를 두고 업계 반응은 반반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쿠팡이 최대 강점인 물류를 활용해 파페치와 손잡고 본격적으로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지난해 21조 원 규모의 국내 명품 시장에서 온라인 명품 시장은 4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국에 있는 물류 센터를 기반으로 명품을 빠르게 배송할 수 있는 만큼 명품 사업을 확대해 점유율을 높일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명품의 온라인 판매 비중이 낮기 때문에 성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죠. 쿠팡도 전체 유통 시장에서 점유율이 한 자릿수 수준이며, 부가가치가 높은 명품 패션, 화장품 등의 분야에선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성장성도 충분하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이미 발란 익스프레스처럼 경쟁사도 빠른 배송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어 로켓배송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차별화되지 않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그리고 직매입 위주의 쿠팡과 거래를 중개하는 마켓 플레이스인 파페치의 사업 모델이 다르기 때문에 명품의 로켓배송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파페치 인수는 쿠팡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투자에 가깝고, 국내 로켓배송과 연관성은 낮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