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행 하려면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드라마나 러닝타임이 긴 영화를 요약한 영상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초행길에 1분 1초라도 더 빨리 가려고 지도 앱으로 최소 경로를 찾아보고, TV를 틀어놓고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한 적 있으신가요? 트렌드 코리아를 집필한 김난도 교수는 이런 현상을 ‘시간의 저글링’이라고 표현했어요. 시간의 단위를 쪼개서 숨겨져 있던 사각지대를 확보하여 꼼꼼히 메우는 것인데요. 마치 어떤 통에 큰 돌을 넣고, 다음 작은 자갈, 그리고 모래 순으로 채우면 돌과 자갈 사이를 모래가 촘촘히 메워주는 것처럼요. 큰 시간과 작은 시간이 공존하고 자연스럽게 여러 일을 한꺼번에 수행하면서 ‘시간의 저글링’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해요.
김난도 교수는 2024년 트렌드 코리아에서 ‘분초사회’라는 키워드를 2024년의 대표 트렌드 키워드로 꼽았어요. 시간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분초를 다투며 산다는 의미인데요. 최근 시간의 가성비, 즉 ‘시성비’가 중요하게 여겨지며 앞으로 시간이 돈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어요. 팬데믹을 겪으며 재택근무와 유연근무를 경험한 많은 직장인들은 출퇴근 시간과 비효율적인 회의, 회식 등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이게 단순히 시간을 절약하는 행위가 아닌 주체적으로 본인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이러한 소비자들의 니즈에 따라서 시간을 절약해 주는 제품이나 서비스들이 뜨고 있어요. ‘3대 이모님’이라고 불리며 집안일하는 시간을 아껴주는 로봇 청소기, 식기세척기, 건조기 같은 가전제품이나 강아지 산책 대행, 대신 줄 서주기와 같은 서비스들을 예로 들 수 있어요. 또, 스포일러를 금기시했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 유튜브에서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즉 결말을 포함한 몰아보기 요약 콘텐츠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음악 인기차트에도 전주가 짧아지고 바로 하이라이트로 넘어가거나, 도입부터 바로 하이라이트로 시작하는 곡들이 많아지고 있고요.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이 있듯 예전부터 시간은 소중히 여겨져 왔는데요. 하지만 최근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시간이 중요해진 이유는 바로 소유 경제에서 경험 경제로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에요. 예전에는 비싼 소유물을 과시했다면, 지금은 어떤 여행지, 맛집, 핫플레이스 등을 방문하고 인증하는 것으로 과시의 방법이 바뀌었죠. 이건 모두 시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에요.
또, 분초 단위로 활용 가능한 IT 기술이 시간을 더 쪼개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어요. 예를 들면 실시간으로 지하철이나 버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배달 앱에서는 정확히 음식 도착까지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분단위로 알려주고 있죠. 그리고 시간을 잡아먹는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사회적 배경도 배제할 수 없어요.
마지막으로,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어요. 타인이 정해놓은 흐름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직접 만드는 시간의 초개인화 시대가 우리 눈앞에 놓여있는 것이죠.